버스 전용 차선에서 제법 사고가 많이 나는 것 같습니다. 워낙 차선 폭이 좁고 한 두 차선으로 되어 있어서 무단 횡단이 많기 때문이겠죠.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무단 횡단 금지 폿말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무단 횡단을 하지 않으면 당연히 사고가 줄겠죠.
하지만, 그 방법 뿐인가요? 보행자의 실수를 줄이는 방법 외에도 하나 더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일단정지'
좁은 차로 덕에 사람이 횡단 보도로 뛰어 들면 운전자가 반응하여 멈춰야 할 시간이 무척 짧습니다. 그렇다면 운전자는 이러한 위험한 구간에서 일단 정지하여 횡단하려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 후 지나가야 하지 않을 까요?
도로 폭이 짧기 때문에, 내가 타야할 버스가 왔기 때문에, 신호 체계가 보행 횡단에 너무 많은 시간을 들이게 하기 때문에, 원래 성격이 급하기 때문에...
그 어떤 이유이든 무단 횡단이 잦은 것은 이미 벌어지고 있는 현상입니다. 그렇다면 방어 운전은 운전자의 의무가 되는 것이지요. 유치원에서 운영하는 버스에서 내린 아동이 길을 막 건너지 못하도록 교육하는 것 만큼이나 '어린이 보호 차량' 옆을 지날 때는 '일단 정지' 하는 것을 법제화한 선진국의 예에서 버스 전용 차로에서는 '일단 정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워봅니다.
모 식품 회사 모 음료의 영양 성분 표기입니다.
제품은 310 mL 이고, 표기는 200 mL 로 했군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특성 성분을 합법적으로 없애기 위함일까요?)
종이팩에 담긴 음료를 2회 제공양으로 간주하는 것은 넌센스이군요.
관련법은 잘 알지 못합니다만
아마도 관계 부처의 의도와는 다른 방식의 표기라고 보여집니다.
이런 말이 있다. 글로벌 시대의 당신의 경쟁자는 지구 반대쪽에서 당신이 잠들어 있는 동안 깨어 있다고... 뭐 무조건 자지 말고 깨어 있으란 말은 아니겠지만 글로벌 시대에는 전 지구인이 내 경쟁 상대다, 뭐 이런 얘기다.
그럼, 우리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수년전, 우리보다 5년 전 선배들은 대학 시절무엇을 경쟁력으로 삼고 공부했을까? 아마도 원서를 보며, 하버드 생들과 같은 책으로 공부한다 정도로 위안을 삼았을 것이다. 그것이 모자르다면, 유학?. 적어도 그들과 같은 것을 보고, 같은 정보를 접하기 위해선 그것이 최선같다.
구글은 공평하고 글로벌 하다. 언제 어디에 있든, 우리가 MIT 학생이든, 연대생이든 같은 정보를 보여 준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교수들도 우리와 같은 정보를 접하는 것이다. 우리는 구글을 통해 정보의 쓰레기장이라 불리우는 인터넷에서 정보를 캐낼 수 있다. 뿐아니라, 구글은 이제 전문적인 정보도 제공한다.
우리의 경쟁력은 정보력이다.
뒤쳐지기 싫다면 구글을 즐겨라. 원서를 본다고 폼잡을 것 없다. 어짜피 그 정보는 구글속 한페이지에 불과하므로..
인류는 아주 오래 전 부터 돌을 깨거나 갈아서 무기로 사용해 왔다. 그런 무지중 타제 화살촉들이 다수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원시 시대에도 활이 존재했을 것이라 추측해 볼 수 있다. 흔히 상상해 볼 수 있는 아프리카의 원시인들의 주된 무기 역시 장창과 활이다. 역사책에 나오는 게르만의 대이동은 동쪽 초원에서 시작한 훈의 공격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가? 결과적으로는 로마 제국을 게르만 세력에 넘어가게 만들었지만, 게르만족은 말과 활을 쓰던 훈족에게 대항할 수 없어 서쪽으로 도망갈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진나라가 그토록 강할 수 있었던 데에는 영화 영웅에서 다들 한번씩 봤을 궁노라는 석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인류태초 부터 활은 총기류가 만들어 지기 직전까지 수 없이 세계사를 고쳐왔다. 무엇보다 우리나라가 외부의 공격으로 오랜 기간 그 자주성을 지킬 수 있게 했던 일등공신이 바로 활이란 점에서 활에 대해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와 활
우리민족의 활의 민족이라는 사실은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역사 교과서에 동이족라고 언급되어 있는 정도만 알고 있을 것이다. 동이라는 글 뜻은 동쪽의 활을 쏘는 사람으로 한국인의 조상인 예맥족을 부르던 말이다. ( 오랑캐이 자의 상형 뜻 ) 고조선은 중국이나 주변국에 축하할 일이 있을 때 활을 보낸 것으로 기록되어 예맥족의 활의 가치가 그만큼 높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고구려의 고분벽화인 무용총의 <수렵도>에 보면 말을 타면서 활을 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사냥에 사용하는 주 무기가 활이었음을 보여 준다..
수렵도
또한, 다시 언급하겠지만 고구려 이래로 한국의 산성들의 모양이 치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만 보아도 전쟁에 있어 활의 의존도가 대단히 높았다는 것을 알 수있다.(이유는 밑에서)
활의 종류와 예맥각궁 ... 통아와 편전
우리나라의 전통활 또는 국궁이라고 말을 꺼내면, 생각나는 그림이 있을 것이다.. 바로 이 것이다.
활
일반적인 활은 직궁 형태로 가장 원시적인 형태로 그냥 나무를 휘어 시위를 단 형태를 띤다. 대부분의 활이 그렇고,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일본의 활도 이와 유사한 형태이다. 원시적이라고는 하지만 영국을 백년전쟁에서 오랜 기간 우의를 점하게 한 잉글리쉬 롱보우는 강한 파괴력으로 유명하다. 반지의 제왕에서 엘프들이 사용한 활도 롱보우랑 비슷하다. 이런 직궁의 형태에서 보다 발전된 것이 만궁이다. 활은 기술이 발전하면 할 수록 활의 길이가 짧아 지고 뒤로 많이 휘어 진다. 이런 만궁은 활 시위를 제거하면 반대 방향으로 뒤집어 진다. 그만큼 강력한 전투력을 내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활은 형태상 만궁으로 분류되며, 재료로 구분한 각궁, 또는 복합궁에 속한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한 활은 물소의 뿔, 궁간상, 소의 힘줄 등의 특수한 재료가 들어가 그 탄성을 증가 시켰다고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우리 민족은 기술이 발전하고 성장하면서 화살을 화포에 장착하여 화차를 만들거나 대형 노궁을 미사일 처럼 발사 했을 뿐 아니라, 명적(효시)을 만들어 신호로 사용하는 등 활과 함께 한 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 기술적으로 놀라운 성과는 통아와 편전이었다.
편전
편전은 소형 화살로 600m 밖에서도 갑옷을 관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정말일까?) 이찌되었든 유효 사거리가 240m 에 최대 사거리는 600m라고 볼 수 있다. 보통 화살의 세배 정도의 수치이다. 편전을 쏘는 방법은 절대 비밀 사항이었으며, 적군이 편전을 주워도 일반 활로는 사용할 수가 없었다.
활의 전투력
전투에 임하는 군인은 대부분 갑옷을 입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비늘 갑주를 입었고, 유럽에서는 철판으로 된 플레이트를 입었다. 기사들이 입던 갑옷은 화살을 막을 수 있었을까? 정답은 어림없다이다. 우리나라의 활은 사거리가 300m 넘는다. 갑옷을 입어도 왠만한 거리에서는 갑옷은 관통되고 일단 박힌 화살은 뽑을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이후 사슬 갑옷으로 갑옷이 진화하게 된다.
활과 산성
앞서 말한 것 처럼 활은 우리나라의 성 방어의 없어 서는 안될 주무기 였다. 우리 나라의 성 구조를 보면 축조 기술이 매우 발전 했음을 알 수 있다. 성들이 대부분 산세가 험한 곳에 위치한 산성이고, 기본적으로 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 모양으로 성을 짓는 것을 말한다. 활로 성을 수호하다가 적군이 성 바로 밑에 까지 오면, 속수 무책이다. 일반적으로 성 밑은 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이 치 구조로 되어 있으면, 성을 점령하기 위해 적군이 성 바로 아래까지 오거나 적군이 성벽을 오르게 되면 치의 모양 때문에 반대편 성을 수호하는 궁수에게 노출되게 된다. 궁수는 성 내부에서 안전하게 숨어서 성을 오르는 적군을 저격하기만 하면 된다.
수 양제와 당 태종이 고구려를 침입하면서 벌인 요동성, 안시성에서의 공방전, 그중에서도 요동성 공방전은 6개월에 걸친 공방전으로 전세계 역사상 단일 전투로 가장 큰 규모였다. 수 문제는 30 만의 병력으로 고구려군에 패하고, 수 양제는 100만이 넘는 규모로 패하였고, 2년후 100만 병력으로 재 침공후 퇴각 하였다. 안시성 전투 역시 4개월이 넘도록 함락되지 않았고 모두가 잘 아는 토산 건축과 고구려군의 토산획득으로 안시성 전투는 당군의 패배로 끝나게 되었다. 만약, 우리 민족에게 활이 없었더라면 지금 쯤 우리 영토가 중국 땅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활과 말
사실 활을 방어전에만 사용한다면 흥미가 떨어질 것이다. 지금 부터 유목민의 도움을 받아 활의 능력을 최대화 한 전술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유목민은 보통 넓은 평야를 돌아다니며 생활한다. 이들은 주로 가죽으로 된 가벼운 갑옷을 입으며, 활을 사용한다. 바로 이 활의 우리 조상이 쓰던 활과 재료와 형태가 유사하다. 즉, 경갑을 한 기마궁수이다. 활을 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적군에 접근할 필요가 없고 갑옷이 가벼워 기본적으로 말이 빨리 달릴 수 있어 전략으로 기습하고 퇴각할 수 있다. 게르만족이 훈족에게 당한 것은 바로 이것을 극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서유럽의 주력 무기는 대부분 중갑 기마병이었는데, 이동 속도도 느리고, 근접을 할 수가 없어서 기마 궁수에는 당해날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또한, 말과 활을 흉내내려고 해도 당시 유럽은 말을 타다가 등자가 없어 두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이를 이용한 아름다운 시츄에이션은 아군 후방에서 화살을 충전해 적진에 나아가 화살을 퍼붓고 잽싸게 도망오는 것이다. 화살비에서 살아 남은 기사가 추격해 와서 기마 궁수는 두 손이 자유롭기 때문에 살짝 몸을 틀어 도망 가면서 활을 뒤에다 쏠 수가 있다. 거리가 가깝다면 갑옷도 화살로 부터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 바로 이 장면이 이 장면 !!
말을 타다가 뒤돌아 쏘기. 이것은 말과 활로 연출할 수 있는 가장 극적인 장면이다. 이순신 장군이 군사 시험에서 바로 이 장면을 연출하다가 낙마한 것이 아닐까. :-) 수렵도에서 이와 같은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활과 해상 전투
활의 힘이 또 한번 극에 달하는 상황이 있다. 바로 물 위에서의 전투이다. 물 위에서는 패배는 거의 전멸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활이 더욱 그 힘을 발휘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해양 대국이었다. 아무도 모르고 있지만, 백제가 그랬으며 신라의 장보고가 그랬고, 임진왜란에서도 거의 승리했다. 수나라의 엘리트 수군가 맞서 싸웠던 고구려 수군의 전투 양식을 살짝 살펴보자. 당시 해전의 일반적인 형태는 배를 서로 붙이고 백병전을 펴는 것이었는데 고구려 수군은 백병전이 아니라 화공을 했다고 <수서>는 전한다. 또한, 임진왜란 중 조선의 수군의 전투 방식도 이와 비슷하다. 물론 고려 후기 이후 화포가 도입되어 화살과 함께 화포 공격을 했다는 것만 빼면 고구려 때와 비슷한 전투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삼국시대에서도 왕건은 나주해전에서 견훤의 함대를 바람을 등진 채 화공을 했던 걸 보면 우리는 좀 치사한 민족인가?? ^^:; 결론적으로 배는 서로 마주하기 전까지는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 하고, 좁은 공간에서 산개할 수가 없기 때문에 활이 더없이 중요한 무기가 된다.
활의 정신
지금 까지 우리나라 민족에게 있어 활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 보았다. 마지막으로 활에 담긴 정신에 대해 알아보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 하겠다. 옛 사람들은 활쏘기를 도의 경지로 승화시켰는데, 활과 화살과 몸이 혼연일체가 되는 경지를 삼합이라고 하여, 활을 쏘는 기술보다 앞서 정신 수양을 강조했다. 다음은 궁도 9계훈이다.
인애덕행 : 어질게 사랑하고 덕을 행한다. 성실겸손 : 성실하고 겸손하라. 자중절조 : 스스로 신중히 행하고 절도를 지킨다. 예의엄수 : 예의범절은 엄하게 지켜야 한다. 염직과감 : 바르고 곧고 용감하게 행동해야 한다. 습사무언 : 활을 쏠 때는 말을 삼간다. 정심정기 : 몸과 마음을 바로게 한다. 불원승자 : 이긴사람을 원망하지 않는다. 막만타궁 : 다른 사람의 활을 당기지 않는다.
일본의 활이 세계에 소개되면서 일본의 활이 사무라이도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무기로 자리잡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국의 활이 세계에 알려지고 한국 활에 담긴 지혜와 도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재가 되길 기원한다.
[참고문헌] 활이 바꾼 세계사 (김후 지음/ 가람기회 출판) ISBN : 8984351148 유목민 이야기 (김종래 지음/ 자우출판 ) ISBN : 8987155501